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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독후감

[소설]모순 - 양귀자

p. 15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p. 19

내 삶이 이토록 지리멸렬해진 것을 모두 다 어머니에게 떠넘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원인을 분석한다고 때로는 문제가 있는 가정에, 혹은 사회에, 아니면 제도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가끔 그런 분석들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자신의 방종을 정당화하려는 젊은애들을 만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의 교활함을 참을 수 없어한다.

특히 열대여섯 되는 어린애들이 텅 빈 머리로 앵무새처럼 그런 핑계를 대고 있으면 뺨이라도 한 대 올려 붙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야 한다.



p. 20

-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 한다 -

그랬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삶에 대해 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되어 가는 대로 놓아 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p. 25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들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삶이란 뜻이다.



p. 27

어머니나 나에게는 수치스러운 기억이 이모에게는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는 것, 그러나 그것만이 다였을까. 그걸 모르는 이모가 아니었다.



p. 31

포탄이 터지고 총알이 쉭쉭 나는 전쟁터에서는 누구라도, 결코, 지루할 수 없는 법이다.



p. 37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임에 틀림없으니까



p. 46

내 인생은 나의 것이지만, 그러나 진모에게는 누나의 인생이기도 하고 어머니에게는 딸의 인생이기도 한 것이다. ...

주체를 나로 놓고 보면, 그러면, 중요도가 확 달라진다.



p. 208

세상의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몹시 불행한 일이었다.

주리를 보면서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평생동안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었다.



p. 209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 있는 일이었다.



p.270

어머니는 더욱 바빠졌고 나날이 생기를 더해 갔다. 아, 어머니의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



p. 272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여졌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p. 273

뜨거운 줄 알면서도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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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개! 소설이다 ㅎㅂㅎ

방학처럼 아무 높낮이가 없는 콩국수 같은 삶보다는 슬프고 화내고 웃는 삶이 더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던 내 생각과 공감가는 내용들이 많았다.

무료할 때, 무료함을 지나쳤을 때, 불행한 듯 바쁠 때, 또 이를 지나쳤을 때 읽으면 더 공감이 잘 가는 소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