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몽키'라는 제목에 속아 읽기 시작한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카오스 엔지니어링'과 관련된 내용을 기대했다. 실은 저자가 실리콘밸리에서 겪은 IT 업계의 비하인드를 담은 회고록이었다. 저자는 솔직하고 대담한 필력으로 스타트업 창업과 인수합병,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IT 대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글을 읽다보면 저자인 마르티네즈는 똑똑하지만 거칠고, 잔꾀가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책 내용과 관계없는 '카오스 몽키'를 제목으로 삼은 것은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전략이지 않았을까 의심스럽다.
'카오스 엔지니어링'이란, 시스템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견딜 수 있도록 실험하는 것을 말한다. 운영 시스템에 무차별적인 부하를 일으켜 분산 시스템의 장애 지점을 찾아내고, 회복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카오스 몽키'란, 2016년에 넷플릭스에서 '카오스 엔지니어링'을 위하여 만든 IT 도구이다. 카오스 몽키는 무차별적으로 서버 인스턴스에 장애를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책이 출시된 2016년에는 '카오스 몽키'가 IT 업계에서 힙하게 떠오르는 용어였을 것이다.
저자는 골드만삭스에서 퀸트전략가로 근무하던 중, 애드테크 스타트업으로 이직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마음 맞는 엔지니어 2명과 광고 트래킹 툴을 만드는 애드테크 스타트업을 차린다. 이후, 스타트업은 트위터에 매각하고, 저자는 페이스북에 제품 관리자(PO)로 입사하게 된다. 책에는 이 과정에서 벌어진 비하인드 스토리가 기록되어있다.
제목에 속아 읽기 시작했지만, 생각 외로 나와 잘맞는 책이었다. 빠르게 성장하다가 위기를 겪은 스타트업, 규모가 성장하여 안정기에 접어든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 모두 낯설지 않았다. 나는 애드테크 스타트업에서 첫 직장생활을 경험했고, 이후 이직한 직장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인수합병으로 점점 규모가 커졌다. 직장에 다니면서 느꼈던 애매한 상황들이 이 책에는 직설적으로 표현되어있었다. IT 스타트업에서 겪는 일이 실리콘밸리와 한국 모두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에서 애드 테크 용어를 다룰 때에는 옛 기억이 떠올라 반가웠다.
이 책은 IT 제품관리자, 스타트업 종사자에게 추천한다. 6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여서 부담스럽지만, 소설처럼 가볍게 보면 좋을 것 같다.
📝 밑줄 그으며 책 읽기
페이스북에서 목격한 바에 따르면 수천명에 이르는 사람들과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에 영향을 주는 고차원적 결정은 직감, 당시 작용하는 정치역사학적 상황, 그리고 바쁘거나 인내심이 없거나 무심한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무자의 능력에 달려있는 것 같다.
경영상의 문제에도 애드케미에 몸담은 200명가량의 직원은 무르티와 회사에 강한 충성심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 중 여럿은 다른 곳에도 취직할 수 있는 매우 숙련된 전문가였는데도, 회사의 경영에 문제가 있거나 무르티가 대놓고 홀대를 해도 견뎌냈다. 무르티의 성깔은 악명 높아서 종종 직원을 모욕하는가 하면 이유도 없이 해고하곤 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언제나 상대의 꿈을 비하하는 반면, 위대한 인물은 나 또한 위대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세상에서 진리는 오직 수학적 증명과 물리학 연구실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 외의 모든 곳에서는 정답이란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그 의견이 집단의 지지를 받는 다면 실제로는 옳지 않더라도 진리의 권좌에 오르게 된다. 그래서 내가 들어가고자하는 집단에서는 무엇이 진리로 통하는지 파악해야한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머릿속의 답안 후보 중 어느 것을 말할지 고르면 되는 것이다
- 저자는 면접 전에 면접관 후보들을 추려내어 사전조사를 하여, 면접관의 성향을 미리 파악한다.
캘리포니아의 컴돌이들은 아무리 파렴치한 일을 겪어도 양심이나 원한을 품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관대한 행동에 특별한 보상을 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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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사람들이 건네는 겉보기에 한없이 밝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는 사실 "엿이나 먹어.난 상관없으니"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앙심을 품지 않고, 명상요가 수업에 가는 길에 누워있는 노숙자도 가뿐히 넘어서 지나간다. "가볍게 생각해"라는 말이 인생의 철학으로 격상된 곳이다. 때문에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삶의 태도는 이기심이라는 터보엔진을 단 아노미와 같다.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진보적 원칙도 조금이나마 존중하고, 기술 발전을 이루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실은 자본주의적 프리즘에 굴절된 지속적인 자기계발만 좇을 뿐이다.
해커톤은 페이스북다운 분위기를 퍼뜨리는 사기진작 대회와 비슷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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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의의는 없지만 자발적 창조, 회사에 대한 충성, 파괴적 혁신이라는 가치관을 숭배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이후 다른 회사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그들은 마치 페이스북의 방식이 신이 드러내 보인 진리인 양 편견과 관점을 지니고 간다. 지금 페이스북에 몸담고 있는 전직 구글 직원도 한때는 마찬가지였으리라.
스타트업에서 일하든 페이스북처럼 유명하고 복잡한 대기업에서 일하든 상황은 똑같다. 제품관리자는 똥의 폭풍 속에서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팀원들의 머리 위에 너무 커서 들기도 힘에 부치는 거대한 똥우산을 씌워주는 엔지니어링 팀의 머슴 같은 존재다.
정의에 따라 제품 관리자는 할 필요가 있는 모든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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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제품 계획안에서 그들의 제품과 비교되는 몇몇 요소를 문제 삼고 우선순위에서 밀어내려 할 때는 목소리를 높여 팀을 방어해야 한다.
뛰어난 제품관리자는 내가 구상한 제품을 만들어내도록 엔지니어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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